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사울 굿맨, 지미 맥길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by 인포유즈플 2025. 6. 12.

몇 년 전, TV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를 처음 봤을 때는 그저 마* 범*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인물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사울 굿맨"이란 이름을 가진, 지나치게 화려하고 말이 빠른 변호사.
그 후속작인 <베터 콜 사울>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지미 맥길이라는 걸. 그리고 그 이름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슬프고, 인간적인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걸요.

사울 굿맨, 지미 맥길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이름이 바뀌면 인간도 바뀌는 걸까?

슬리핀 지미에서 사울 굿맨까지: 그는 처음부터 사울이 아니었다

지미 맥길이라는 인물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연민이 생깁니다. 그는 처음부터 사기꾼도, 범죄자의 변호사도 아니었습니다.
형의 로펌에서 우편물을 정리하던 조그만 남자. 그러나 누구보다도 법조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
척 맥길이라는 완벽주의적이고 보수적인 형은 그의 모든 걸 무시했지만, 지미는 형의 인정을 받으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가진 본능 자체가 달랐다는 점입니다. 지미는 ‘슬리핀 지미’라는 별명을 가진, 어릴 적부터 잔재주와 말장난으로 위기를 넘기던 인물이었습니다. 그 본능은 형식적인 법조계의 울타리 속에 제대로 담길 수 없었고, 결국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의’를 해석하게 됩니다.

사울 굿맨이라는 이름은 단지 예명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지미가 지미로서 살아가기엔 세상이 너무 차가웠고, 법이라는 구조는 그에게 ‘공정함’이 아닌 ‘차별’을 안겨주었기에 그는 스스로를 지우고 새로운 껍질을 입은 겁니다.

도덕성의 해체: 지미는 죄책감을 느꼈고, 사울은 계산했다

지미는 도덕적인 잣대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속이기도 했고, 말장난으로 판결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심각하게 해치거나 희생시키는 일에는 망설임을 보였습니다. 킴 웩슬러에게 보여주는 순수한 마음이나, 무너진 고객을 돕기 위해 무리한 선택을 하는 모습은 ‘지미’의 흔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점 타협합니다.
법이 정의롭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순간, 그는 법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사울 굿맨은 그 타협의 완성체입니다.
그에겐 이득과 결과만이 중요했고, 정의나 양심은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도덕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낸 듯, 사울은 철저히 역할만 수행합니다.

지미는 고민했지만, 사울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 차이가 이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더 비극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감정의 균열: 킴 웩슬러, 그리고 사랑이라는 가장 무거운 책임

사람은 사랑할 때 본모습을 드러낸다고 하죠.
지미 맥길이 사울 굿맨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본 유일한 사람이 바로 킴입니다.
그녀는 지미의 유쾌함을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의 위험한 본능에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끌림은 결국 그녀도 어두운 길로 이끌었습니다.

킴은 처음엔 도와주려 했고, 때로는 함께 공모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엔 점점 갈등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그것은 명백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지미와 사울 사이에서 방황하던 킴의 모습은, 결국 지미 자신이 외면하던 죄책감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지미가 사랑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사랑 앞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는 사울이라는 인격으로 도망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울 굿맨이라는 유산: ‘이름’이 바뀌면 ‘인간’도 바뀌는 걸까?

사울 굿맨은 단순히 브레이킹 배드 세계관에서의 감초 캐릭터가 아닙니다.
그는 ‘포기’와 ‘방어’의 다른 이름입니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지우고, 실패와 수치를 버티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을지 모릅니다.

지미라는 사람은 세상에 상처받았고, 법이라는 시스템에 거절당했으며, 사랑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그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이 ‘사울’이라는 이름이었고, 그 이름은 이제 그 사람의 유산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사울 굿맨은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지미는, 정말 마지막까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걸까?

결론: 사울 굿맨은 우리 모두의 그림자다

지미 맥길과 사울 굿맨, 두 이름 사이의 간극은 단지 드라마 속 인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도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회사에서의 직책, 가정에서의 역할, 사회적 기대. 그 모든 것들이 나라는 사람의 일부를 지워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미의 여정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나를 지키고 있는가?’
‘혹시 나도, 사울 굿맨처럼 어떤 방어막을 입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조용히 생각해 봅니다.
지미 맥길이라는 사람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 안의 인간성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이 이야기를 진짜 가치 있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필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심이 먼저라는 걸 다시 느낀 글이었습니다.
당신도 이 글을 읽고 마음속의 ‘지미’를 떠올려보셨다면, 그것만으로 이 글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